98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10년전 하석주의 추억
10년전 하석주의 추억하면 그 유명한 가린샤 클럽이 생각나죠.
98프랑스 월드컵이 벌써 10년전 일이네요.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그 당시 열심히 뛰었던 선수들이 이제는 벌써 감독이 되고 코치가 되었네요.
홍명보, 서정원 선수를 비롯해서, 유상철, 김도훈, 최용수, 하석주, 이민성, 김태영 선수가 있었고 유망주였던 이동국, 고종수 선수도 있었죠. 골키퍼는 김병지였고, 감독은 차범근 감독이었습니다.
98년만 해도 한국은 월드컵 역대 전적이 3무 8패라는 초라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16강 진출 보다 1승을 한번 해보자는 목표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조편성에서 네덜란드, 벨기에, 멕시코와 한조에 편성되어 1승도 쉽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멕시코! 너는 해볼만 하다!
그나마 멕시코와 처음 맞붙어 멕시코에게 1승을 해보자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경기는 초반에 순조롭게 잘 지나갔습니다. 하석주와 노정윤이 좌우에서 공격을 이끌며 공격해 나갔습니다. 계속되는 공격 끝에 페널티박스 바로 앞에서 좋은 프리킥찬스를 얻어냅니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골문을 향해 프리킥을 찼고 벽을 쌓았던 멕시코 수비수의 머리를 스치면서 그대로 골망을 흔듭니다. 1 - 0으로 앞서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월드컵에서 1승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는 다시 멕시코의 선축으로 시작됐고 골을 넣은지 1분도 안지난 것 같은데 하석주의 태클에 주심의 휘슬이 울렸습니다. 누구나 저건 옐로우카드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주심은 거침없이 레드카드를 뽑아 들었습니다.
백태클로 인한 퇴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98년에 새로 도입된 백태클을 가하면 퇴장이라는 새로운 룰 때문이었는지 위협적인 태클이 아니었는데도 하석주는 퇴장당하고 맙니다.2006 월드컵에서도 대회직전에 오프사이드 룰이 완화되었죠. 30억 인구가 시켜보는 큰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룰을 수정하는 것은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아무튼 98년에도 새로운 룰 때문인지 약간은 억울한 퇴장을 당하고 맙니다.
골을 넣고 바로 퇴장을 당하다니... 사기가 꺾였던 멕시코는 다시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멕시코가 동점을 만들더니 주 공격수 루이스 에르난데스가 연속골을 뽑아내며 3 - 1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경축! 가린샤 클럽 가입!
골을 넣었던 하석주의 퇴장이 두고두고 아쉬웠던 경기 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하석주는 가린샤 클럽에 가입을 하게 됩니다. 펠레와 함께 천하무적 브라질을 이끌던 가린샤가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갑자기 상대 선수를 걷어차 퇴장을 당하면서 '골을 넣고 퇴장 당한 선수들'이란 뜻으로 가린샤 클럽이 결성(?) 되었습니다. 가린샤 클럽 멤버는 가린샤를 비롯해 하석주, 호나우지뉴, 지단으로 구성되어 있죠.오렌지군단 너무 강하네
1패의 충격을 안고 한국은 네덜란드를 만나 5 - 0 대패를 당하고 맙니다. 네덜란드는 코쿠의 첫 골을 시작으로 오베르마스, 베르캄프, 로날드 데보어가 한 골씩을 넣었고 너무 간단한 경기라 베르캄프와 교체해서 들어간 반 후이동크마저 해딩골을 넣으며 5 - 0 대승을 거둡니다.
이 경기에서 돋보였던 선수가 바로 이동국이었습니다.
공격다운 공격한번 못하던 한국은 후반전 패색이 짙어지자 어린 선수였던 고종수와 이동국을 투입합니다. 이동국은 힘 한번 못쓰던 한국팀에서 매서운 슛팅을 날리며 좋은 활약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골을 넣지는 못했고 팀은 패하고 맙니다.
투혼의 역사는 10년전에도
네덜란드전 대패와 대회 두 경기 연속 패배, 16강 진출 좌절을 이유로 차범근 감독은 대회 도중 경질 됩니다. 마지막 벨기에전은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경기를 치루게 됐습니다.
퇴장에서 다시 돌아온 하석주와 모든 선수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벨기에에게 한골을 먹혀 1 - 0으로 패색이 짙었지만 3연패만은 할 수 없다는 듯 열심히 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수비수 이임생은 충돌로 인해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붕대로 머리를 둘둘 휘감고 계속 뛰었습니다. 후반 종료 직전 마침내 유상철 선수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고 경기는 1 - 1로 패배를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16강이 좌절됐기 때문에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였죠.
98년 대회까지만 해도 4무 10패라는 초라한 성적의 한국이었기 때문에 2002년 4강 진출이 신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10년전 골을 넣고 기분 좋다가 가슴이 철렁했을 하석주는 지금 K-리그 경남FC 코치가 되어 선수들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콧수염 기른 10년전 히딩크 감독의 추억 (8) | 2008/05/04 |
|---|---|
| 지단 vs 호나우두, 1인자는 과연 누구? (14) | 2008/04/04 |
| 프랑스 월드컵, 10년전 아쉬운 하석주의 추억 (17) | 2008/03/20 |
| 바티스투타, 90년대 아르헨티나를 이끈 '바티골'의 추억 (21) | 2008/03/01 |
| 90년대를 풍미한 득점 아티스트, 베르캄프의 추억 (18) | 2008/02/16 |





방송 베스트
연예 오락
드라마
월드컵 추억
역대 축구기록
네덜란드 KNVB
유로 2008
추천 블로그
사이트 정보
플래시 게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때 하석주씨가 욕을 많이 먹었었죠.^^;;;;;
)
이제 4강진출이라는 이력을 가졌으니 크게 문제되는 건 아니지만요. ㅎ
(근데 다시는 그렇게 못 올라갈 듯...
맞아요^^ 정말 욕 많이 먹었었죠^^;;
다시 4강에 진출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월드컵을 한국에서 한번 더 열었으면 좋겠네요
다른 경기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새벽에 했던
네덜란드 전을 보기위해 밤을 새기도 했었죠.
이제는 어떤 경기를 보기 위해 밤을 새거나 기다린적이 없네요.
저도 네덜란드전을 보기 위해 밤을 새서 기다리던 생각이 나네요^^
너무 새벽에 해서 축구 보기가 쉽지 않았던것 같아요^^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월드컵출전사상 선제골을 넣은 첫 경기가 98년 멕시코 그 경기였죠.
저는 당시 하석주선수가 첫골넣고 조금 흥분한걸로 보였어요..첫골후 바로퇴장..후반연속3골 헌납..그 경기 변명의 여지 없이 패인1순위는 하석주선수임을 부인하기 힘들죠.
갑작스레 바뀐룰이라지만 국가대표선수로서 더군다나 월드컵같은 대회에서 반드시 숙지하고 염두에 뒀어야죠..머 이젠 다 지나간 일이지만...
저도 기억이 나네요^^
선제골을 넣었을땐 정말 좋았었는데 바로 퇴장당해서 아쉬웠어요^^
좀 더 차분하게 했으면 좋았을것 같네요^^
스크랩을 하셨었네요^^ 저도 그랬었는데... ㅎㅎ 글 잘보고갑니다.
네^^ 정의의 사도님도 스크랩을 하셨었나봐요^^
저도 스크랩 해서 모아뒀었어요^^
제 기억으론 네덜란드 전에서 매서운 슈팅을 보여 준건
후반 25 전후에 들어갔던 고종수 선수 였던 걸로 기억 합니다..
이동국 선수는 거의 후반 40분 다되서 들어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너무 심하게 유린 당해서 아직도 기억이 나는 군요...
이동국 선수가 후반전 10분쯤 남기고 늦게 들어갔군요^^
고종수 선수도 정말 잘했었어요^^
그때 젊었던 고종수와 이동국 선수가 생각나네요^^
후반 교체해서 매서운 슈팅을 날렸던건 고종수가 맞습니다..
이동국보다 더한 비운의 축구천재였죠..
위에 두 분 틀리셨네요. 네덜란드전 막판에 골포스트 위로 살짝 넘어가는 한국팀 슈팅중에 가장 괜찮은 슈팅 날렸던 선수는 고종수 아니고 글쓴님 말씀처럼 이동국이 맞습니다.
네덜란드전, 요거 볼려고 잠자다 일어났는데-
너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 중간에 다시 잘까말까 고민했던 기억이..-ㄷ
벌써 10년전이네요 :D
그러게요 벌써 10년전이네요^^
저도 네덜란드전 보려고 밤을 새던 기억이 나네요^^
밤늦게까지 기다렸는데 너무 무기력하게 당해서 아쉬웠었어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언제와도 로카인라디오 고객센터신기해요..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고객센터 한번 넣어 봤어요^^
가린샤 클럽... 참 재밋군요. 그러나 그 경기 후로 '한국축구는 똥볼 축구다'는 낙인이 찍혀 버렷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