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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르노의 월드컵 이야기 - 제2회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 이탈리아
준우승 - 체코슬로바키아
3위 - 독일
4위 - 오스트리아

득점왕 - 올드리치 네예틀리 5골 (체코)
에드문드 코넨 4골 (독일)
안겔로 스키아비아 4골 (이탈리아)
레이문도 오르시 3골 (이탈리아)

평균관중 - 21058명
득점 - 70골 (게임당 4.1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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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위대함을 이용한 무솔리니
1회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2회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이탈리아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파시스트 치하 아래 있던 이탈리아는 월드컵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미 재정이 적자인 상황에서도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대회의 최종 목적은 파시즘을 스포츠의 위대함으로 보여주는데 있다'고 천명하며 대회 유치를 밀어부쳤다. 또한 로마, 토리노, 제노아, 밀라노, 볼로냐, 플로렌세, 트리에스테등 8개 도시에서 경기를 치루겠다고 발표한게 큰 효과를 거두었다. 결국 FIFA는 제2회 대회를 이탈리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너희들 내가 개최할때 안왔지? 복수할꺼야!
이탈리아 개최가 결정되자마자 전대회 우승팀인 우르과이가 불참소식을 알려왔다.
우르과이에서 월드컵을 개최했을때 유럽의 강호들이 참가하지 않으려 했던것에 분노하고 있던 우르과이는 보복적으로 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강호 우르과이가 참가하지 않자 다른팀들은 구름처럼 이탈리아로 몰려들었다. 무려 33개국이 참가신청을 냈고 너무 많은 팀들이 참가하려고 하자 16개국으로 줄이기 위해 지역예선을 도입했다. 이탈리아도 그리스와 지역예선을 치루는등 개최국도 예외는 아니였다.
결국 유럽 12개국과 남미 2개국, 북중미와 아프리카에서 각각 1나라가 참여하여 제2회 이탈리아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2회 대회는 1회대회와 달리 조별라운드 경기없이 무조건 토너먼트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팀이라고 패한다면 고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운명이 된것이다.

4주동안 배를타고 이탈리아에 와서 개막전도 못보고 돌아간 멕시코
제2회 월드컵 개막전은 1934년 5월 27일 로마의 토리노 경기장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의 경기로 시작되었다. 이 경기는 개막전이었지만 미국은 이 경기장에서 두 번째로 경기를 치루는 것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북중미 지역예선에서 미국과 멕시코가 대결했다. 그들은 미국이나 멕시코로 경기를 하러 이동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힘을 소비한다고 결정짓고 그런바에는 차라리 이탈리아에 가서 경기를 하자는데 합의를 봤다. 그래도 대회가 열리는 이탈리아에서 경기하는게 의미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승리로 경기는 끝났고, 멕시코는 본선 진출권도 없이 개최국의 메인 스타티움에서 경기를 벌인 희한한 팀이 되버렸다. '축구단이 아니라 관광단'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멕시코 선수들은 로마의 경치를 구경하고 관광하는 것에 만족할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를 이탈리아가 빼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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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이탈리아 월드컵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포치오 감독이 이끌고 있었다.
명장 포치오 감독과 파시스트의 이탈리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병역기피자를 불러들이는 일이었다. 혹독한 병역을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나 남미나 다른나라로 도망간 청년들 중에 명 선수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세계 제일의 왼쪽 윙으로 이름을 날리던 오르시였다. 아르헨티나 대표선수이던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잡혀왔고 푸른색 유니폼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우르과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소속으로 난폭한 플레이를 일삼으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루이지토 몬티도 이탈리아 유니폼을 입게됬다. 몬티는 제1회 대회에선 아르헨티나 국적의 선수였다가 제2회 대회에선 이탈리아 국적의 선수로 뛰는 웃지못할 관경이 연출되었다. 오르시, 몬티, 구와이타등을 비롯한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국적의 많은 선수들은 파시스트 앞에서 이탈리아 유니폼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최강의 선수들로 새롭게 무장한 이탈리아는 미국을 맞아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무솔리니는 파시즘의 획일성을 표현하듯 선수들에게 파란색 상의, 하얀색 하의를 입혔고 관중들은 이런 이탈리아팀을 보고 푸른바다라는 뜻의 '아쭈리군단'이라고 불렀다. 아쭈리군단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에서 끌려온 오르시가 2골을 터뜨렸고, 메이짜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3-0으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전에는 더욱 무서운 기세로 스키아비오가 헤트트릭을 달성하며 7-1로 단숨에 미국을 꺾었다.

너 또 우리 선수 빼갈꺼지? 1군 보내면 또 뺏어갈까봐 2군 보낸다!
우르과이 월드컵 준우승팀인 강호 아르헨티나는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배를 타고 4주간을 달려와서 한 경기를 치루고 아쉽게 돌아가야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루이지토 몬티, 오르시 등 막강 선수들을 이탈리아에 빼앗기자 1진을 보내면 또 빼앗길까봐 아예 2진으로 팀을 구성해서 대회에 참가했다. 2진으로 스웨덴과 맞붙은 아르헨티나는 벨레즈가 선취골을 터뜨리며 분전했지만 스웨덴에게 시종일관 밀리며 3-2로 역전패 당하고 만다.

여덟개의 팔이 달린 골키퍼 등장    
스페인은 축구강국 브라질과 만났다. 어느때나 그렇겠지만 브라질은 당시 세계최강이었다.
훗날 펠레의 스승이 되는 데브리토를 비롯해 레오니다스등이 포진한 브라질은 쉴틈없이 공격했다. 아니 공격만했다. 브라질이 공격의 명수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공격이 시작되면 전원이 상대방진영으로 뛰어들어 공격을 했다. 누가 공격수고 누가 수비수인지 분간할수 없을 지경이었다. 쉽게 말해 선수 전원이 공격을 한뒤 수비를 하지 않은것이다. 더욱 쉽게 말해 수비가 없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너도나도 할것없이 모두 스페인 진영에 투입되었고 브라질 진영은 바람만 쌩쌩불었다.
세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스페인은 리카르도 자모라는 브라질의 모든 슛팅을 막아낸다. 자모라가 지키는 골문은 빈곳이 보이지 않았다. 여덟개의 팔이 있다는 자모라의 신화는 브라질이 만들어준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경기는 수비수가 없는 브라질 진영을 헤집고 다니지 못한 스페인이 이상해 보일정도였다. 결국 브라질의 맹공격을 잘 막아낸 스페인이 3-1로 승리를 차지했다.

불운의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토리노에서 이번 대회 명승부를 연출했다. 우르과이 월드컵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통한의 6분을 날린 프랑스는 그때의 울분을 토해내듯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1회 대회에서 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던 골키퍼 데포가 복귀하고 마뜰레가 이끄는 수비진은 튼튼했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의 투지는 오스트리아의 기술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못했다.  전반 18분 오스트리아의 종이 비행기 젠델라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가듯 프랑스 골문 앞에서 직격탄을 터뜨렸다. 프랑스도 재빨리 니콜라스가 동점골을 터뜨렸지만 후반23분 오스트리아의 비칸이 2번째 골을 성공시킨다. 패색이 짙던 프랑스는 종료직전 극적으로 페널티킥을 얻어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월드컵 첫번째 무승부였다.
연장전에 들어가 프랑스는 너무 마음만 앞섰다. '독일인은 걷기 전에 생각하고, 잉글랜드인은 걸으면서 생각하며, 프랑스인은 걷고 나서 생각한다'는 말이 딱 들어 맞을 정도로 놀라운 체력과 투지는 돋보였으나 성급하게 차는 슛팅은 번번히 골대위로 날라가버렸다. 연장 후반 3분 오스트리아의 젠델라는 위협적인 패스를 선보였다. 젠델라의 패스를 받은 지알이 그대로 골문을 향해 슛팅을 날렸고 그것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프랑스 선수들은 오프사이드가 아니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판정이 번복될리는 없었다. 프랑스는 그렇게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당시 오심을 했던 네덜란드의 반 무어셀 주심은 경기 후에 '하루 전날 밀라노에서 벌어진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경기에서 네덜란드가 2-3으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그만 뼈아픈 오심을 했다'고 변명했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1회 대회에서 그랬듯이 2회 대회에서까지 오심으로 경기를 망쳤다'며 심판을 원망했다.

8강전에서 만난 이탈리아와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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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의 주인공 스키아비아(ITA)

8강전에 진출한 나라는 모두 유럽국가였다. 한달동안이나 되는 먼 여정 끝에 치루는 경기라 아무래도 유럽국가에 유리할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과 8강전에서 만났다.
이탈리아는 전반에만 16개의 코너킥을 얻었지만 자모라가 지키는 골문을 뚫지는 못했다. 스페인은 역습으로 전반42분 랑가라의 롱패스를 받은 레게이로가 정확하게 득점하며 1점을 앞서나갔다. 선제골을 올린 레게이로의 아들도 훗날 스페인 국가대표로 활약하게 된다.
아무튼 후반전 대추격전에 나선 이탈리아는 피치올로의 프리킥 찬스에서 페라리가 결정적인 해딩슛을 터뜨리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해 다음날 재시합을 치뤄야했다. 당시에는 승부차기 룰이 없었다. 비기면 다음날 재시함을 통해 승부를 가렸다.
스페인의 거미손 골키퍼 자모라는 손 부상을 당해 재시합 경기에는 출전할수 없었다. 반면 이탈리아 선수들은 투지가 넘쳤다. 이탈리아의 포치오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놓고 '내일 시합에 뛰고 싶은 선수만 뛰어라'라고 말했다. 루이지토 몬티를 비롯한 13명이나 스스로 자원해서 뛰기를 원했다. 투지가 넘치는 이탈리아는 재경기에서 스페인을 압도했다. 거미손 자모라가 빠진 스페인의 골문은 역시 헐거웠다. 메이짜가 전반 8분 해딩으로 선취골을 올렸고 그렇게 이탈리아는 4강전에 진출했다.

비에 젖어 날지 못하는 종이 비행기
4강전에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만났다. 이탈리아에 명장 포치오감독이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전술의 귀재라 불리는 마이슬감독이 있었다. 마이슬은 짧은 패스와 화려한 개인기를 위주로 팀을 꾸렸다. 오스트리아 전술의 핵심에 있는 선수가 바로 마티아스 젠델라였다. 종이비행기 젠델라를 앞세워 8강전에서 헝가리를 꺾고 4강전에 진출했다. 두 팀간의 치열한 경기는 시작되었고 경기장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거칠게 내리고 그칠줄 몰랐다. 비 속에서는 젠델라의 화려한 기술도 무용지물이었다. 어떻게는 개인기를 사용해 보려고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비 때문에 짧은 패스도 쉽지 않았다. 결국 종이 비행비 젠델라는 비에 젖어 날지 못하는 종이 비행기꼴이 되고 말았다. 경기는 전반18분 구와이타의 득점으로 1-0으로 이탈리아가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몬티, 오르시, 구와이타 이 3명의 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큰 몫을 한것이다.

체코의 스타 네예틀리가 독일 응원단을 잠재우다    
체코슬로바키아와 독일은 로마에서 4강전을 가졌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독일을 응원하기 위해 나왔다. 또한 나치의 친구인 파시스트의 무솔리니는 독일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경기장에 나왔다. 로마의 토리노 스타디움에선 독일의 붉은 색 나치 깃발이 휘날리고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합세한 응원단은 맹렬히 독일을 응원했다.
하지만 경기결과는 의외로 흘렀다. 벨기에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독일의 코넨이 체코의 수비진에 막히면서 독일은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체코의 스타 네예틀리가 선취골을 넣었다. 후반 13분 독일 노아크의 중거리슛이 플라니치카가 지키는 체코 골문을 폭파시킨다. 응원단의 응원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네예틀리는 기다렸다는듯 바로 한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앞서나간다. 체코의 크르칠이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수많은 응원단들을 침묵속에 빠트리며 3-1로 독일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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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우승!


파시스트의 절규가 승리를 이끌다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세계최강인 이탈리아와 맞붙는다. 루이지토 몬티, 페라리, 메이짜등이 포진한 공격진은 수준급이였으며 세계최고의 윙이라는 오르시와 구와이타가 양쪽에서 버티고 있었다.
체코는 이런 이탈리아를 맞아 후반 20분 선취골을 터뜨렸다. 체코의 푸치가 강슛으로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순간 응원석은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관중석에서는 광분한 관중의 '조국을 위해 죽어라'라는 구호가 끊이질 않았다. 이대로 진다면 자신들에게 독재자 무솔리니가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탈리아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했다.
남은 시간은 8분. 이탈리아의 오르시가 조국을 위해 죽기 위해 시한폭탄을 껴안고 체코의 마지막 고지에 올라섰다. 사기충천하여 돌격해 들어간 오르시는 순식간에 체코의 왼쪽을 파고 들었다. 누구든지 '아~! 왼발이다"라고 직감한 순간 한박자 늦은 오르시의 오른발 슛팅이 절묘한 포물선을 그리며 체코의 뒷그물을 흔들었다. 마치 만화에서 '독수리슛'이라고나 나올법한 희한하고 괴력있는 슛팅이었다. 다음날 카메라에 둘러쌓인 오르시는 똑같은 지점에서 20차례나 슛팅을 해봤지만 그 슛팅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이탈리아의 기세가 무서웠다. 연장 7분 메이짜가 외곽에 있던 구와이타에게 패스를 했고 구와이타는 수비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가볍게 스트라이커 스키아비오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스키아비아의 슛팅이 그대로 골문을 흔들면서 이탈리아는 2-1로 체코를 누르고 제2회 이탈리아 월드컵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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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확정짓고 환호하는 이탈리아 (사진: FIFA.com)

 
파시스트와 나치가 자신들을 선전하기 위해 축구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나 그래도 축구 경기장에서의 90분 만큼은 순수한 스포츠 그 자체였다. 1회 우르과이 월드컵은 몬테비데오 한 경기장에서만 열렸지만 2회 대회에서는 총 8개 도시에서 열리는 등 규모 면에서 월등히 커졌다. 월드컵의 인기도 더욱 높아졌다.
환호하는 이탈리아를 뒤로 한채 월드컵은 4년뒤 프랑스에서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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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omcast Deals 2012.02.23 0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appreciate your speculation as it attracts people’s attention and make this topic discussable. Thanks for sharing your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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